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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의원의 진심토크>말죽거리 잔혹사!
상생과통일 포럼 조회수:880
2015-04-29 16:08:00

 

요즘 책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쓴 책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냥 단편 단편 제가 겪은 일들을 적고 있습니다. 

책은 3부로 구성하여, 제 얘기도 쓰고, 민원의날에서 건져올린 사람얘기 정책얘기도 쓰고, 제가 직접 인터뷰한 26개 국책연구기관이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 얘기도 쓸 예정입니다. 목표는 5월인데 어찌 될지 모르겠네요. 

<말죽거리 잔혹사> 

고등학교 2학년에 갓 올라간 때였다. 당시 난 반장이었다. 2학년 교실 곳곳이 웅성거렸다. 이렇게 된다면 데모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시는 1985년 전두환 독재정권이 시퍼렇게 사회를 통제하고 있을 때였다. 2학년 학생들의 술렁거림과 불만이 학교 측에 포착되었다. 선생님들은 아연 긴장하였다. 학교는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2학년 반장들이 점심시간에 모였다. 각 반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6교시가 끝나자 학생과에서 반장들 전원을 호출한 것이었다. 2학년 반장들은 영문도 모른채 학생과로 집합했다. 다짜고짜 학생주임의 살벌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2학년 때 간다. 그런데 우리 바로 1년 선배, 즉 당시 3학년이 된 선배들이 2학년 때 수학여행을 못 갔다. 당시 대전에 있던 다른 학교에서 수행여행 갔다가 사고가 나서 학생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경우 그 지역에 있는 다른 학교도 수학여행을 안 간다. 3학년 선배들은 안된 얘기지만 운이 없는 학년이었다. 

해가 바뀌어 우리가 2학년이 되었다. 당연히 봄에 수학여행을 가야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공부에 전념해야 할 3학년들의 동요를 우려해서였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여? 3학년은 3학년이고 우리는 우리지.”
“다른 학교는 다 간다고 하더라. 못 가면 우리만 바보되는거여.”
“야, 반장들 똑바로 해라. 이렇게 되면 데모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

분명히 각 반에서 이런 얘기들이 나왔다. 나는 똑똑히 들었다. 그런데 학생과에 호출되어온 반장들의 입에선 다른 소리가 나왔다. 

“야, 임마. 너희들 똑똑히 들어. 감히 어떤 놈들이 데모하자고 선동했어? 빨리 대답 못해?”

키 1미터 80센티에 몸무게 80킬로 이상 나가고 머리가 벗겨진 학생과주임의 손에는 때리기 좋은 크기로 잘려진 당구 큐대가 들려 있었다. 

“우리 반에서는 그런 말 안 나왔는데요.” 
“저희 반에서는 그냥 수학여행 안 갈 모양이지 하는 물음 정도였는데.......”

어이가 없었다. 하긴 저 큐대로 맞으면...... 

“내가 분명히 데모한다는 소리 들었는데 빨리 안 불어?” 

겁은 났지만 그래도 대충 애들 분위기는 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얘기했다.

“선생님, 뭐 구체적으로 데모 어떻게 하자고는 안했지만 단체로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는 많이 나옵니다.” 
“야 임마, 그게 데모하자고 선동하는 거 아냐? 바로 이 반에서 데모 얘기 나왔네 그려. 어떤 놈이 데모 선동했어? 바른대로 얘기 못해 빨리?” 
“아니, 선생님. 누가 특정해서 얘기한 게 아니구요. 그냥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는 얘기......” 
“야 임마, 너 빨리 그 놈 이름 대라. 그리고 나머지 너희들은 반으로 돌아가도 좋다. 얘한테만 얘기 들으면 될테니까.” 

11명의 반장들은 제각각 반으로 돌아갔다. 학생주임실에는 덩치 큰 학생과장과 나만 남았다.

“빨리 얘기해라. 괜히 너만 손해야.” 
“특정해서 누가 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 진짜? 안 되겠다. 그럼, 데모 선동한 놈이 너라고 할 수밖에 없다니까. 야 임마, 왜 네가 다 뒤집어 쓰려고 하냐? 넌 반장 아니냐?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야 할 거 아니냐? 괜히 생활기록부에 나쁜 얘기 씌여지면 좋을 게 어디 있냐?” 

학생주임은 어르고 달래면서 날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 하나를 특정해서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쪽 팔리는 일 아닌가? ‘지금쯤 학생주임실에 나만 남은 거 다 소문났을거야. 누가 주동자로 찍혀서 학생과에 끌려오면 내가 밀고자였다고 다 소문날텐데. 어휴, 쪽 팔려. 난 못한다. 에이 맞고 말자.' 학생주임은 말로는 안 되겠다고 하면서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 허벅지에 풀스윙이었다. 50대까지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개수를 셋지만 어느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60대에서 70대 사이를 맞은 것 같았다. 

“너 안 되겠다. 맞으면서도 반성을 안해? 내일 아버지 모시고 와라.”

아버지 모시고 오라는 말이 제일 무서웠다. 맞은 데 피가 터져 바지에 엉겨붙었다. 버스에 내려 집까지 10분이면 걸어가는데 이날은 1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나 엄마에게 들킬까봐 동생을 조용히 불렀다. 상처를 본 동생은 깜짝 놀랐다. 

“형,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녀? 상처 살벌한데.” 
“야, 너 엄마한테 얘기하면 죽어, 알았어? 빨리 약이나 사와”

밤새 끙끙 앓으면서도 내일 아버지 학교 모시고 갈 일이 까마득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에 얘기했더니 짧게 몇 마디만 하셨다. 

“네가 진짜 했냐?” 
“아니예요, 진짜예요.” 
“그럼, 됐다. 그래도 학교서 부르면 가야지 어쩌겠냐?” 

아버지는 학교에 불려와 학생과주임에게 자식 잘못 길러 죄송하다고 싹싹 용서를 빌었다. 학생과주임은 한참을 나에게 훈계를 하더니만 근신으로 그칠테니 반성 많이 하라고 큰 은전을 베풀었다. 담배 핀 것도 아니고, 패싸움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근신당하고 아버지는 학교에 불려와 싹싹 빌었다.

다음 해 봄방학, 3학년이 되기 직전이었다. 우리 2학년은 수행여행 계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을 갔다. 그 때는 이미 3학년 선배들 대학 진학이 다 결정되었다. 학교로서는 수학여행 못간 3학년이 또 생기면 또 2학년이 되는 애들은 어찌할 지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우리 아직 2학년들을 수행여행 보내주었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해 수학여행에서 나는 겨울바다에 뛰어들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양천을) 

http://www.up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4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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