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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영환 국회의원 - 잔도(棧道)는 없다, 사즉생(死卽生)이다
hollyhock 조회수:959
2014-09-11 14:19:15

 

추석이 지났다. 정치不在다. 정치失踪이다. 추석민심?  단언하자면 국민이 정치를 버렸다. 민심이 떠난 지금 엄밀한 의미에서 나는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 무능하고 오만하기는 대통령과 국회가 한통속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해 왔다.  이 나라 정치인들은 민심난독증에 빠진지 이미 오래 되었다. 

더 한심하고 기가 막힌 것은 만년 야당의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서도 安貧야당(?)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길거리에 나가 투쟁의 깃발 아래 숨어 위기를 망각하는 이 구태의연한 장외정치에 박수를 보낼 국민이 또 있을까? 

위기의 진원지는 “대중노선에서 이탈한 정치”를 해 온 지난 10년 세도세력들이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다시 부상하는 데에 있다. 야당의 비극이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이들을 대체할 세력도 뚜렷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패배주의에 젖어 ‘탈당이니 분당’이니 하는 말을 쉽게 꺼내 들고 있다. 이 또한 성급하고 비겁하다. 

잘못된 노선과의 결별이 가능한가!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국민의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 그런 노선으로는 결코 승리하지 못한다. 이 경로의존성의 정치에 국민은 물론 당원들이 신물이 나 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소수의 무자비한 비판과 정체불명의 댓글에 견뎌야 한다. 모발심의 강을 건너야 한다. 국민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건강한 야당 든든한 야당이 없이는 정치가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야당의 집권을 기다리는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우리에게 잔도(棧道)는 없다. 사즉생(死卽生)이다.

야당은 상투적인 반성과 당의 쇄신을 입으로만 반복하고 있다. 정파적 이해에 따라 기득권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길게 보아 지난 10년은 동일한 패배의 방정식을 풀지 못했다. 그러나 해법은 있다. 국민은 무수히 그 해법을 제시했고 우리는 그때마다 귀를 닫았고 국민이 한숨짓고 절망했다.

이 패배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우선 지난 선거를 뒤돌아 보고에 책임 있는 자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이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결론이 뻔한 해법으로 다시 적당히 수험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예선탈락의 수모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야망은 집요할수록 패배의 결과는 잔인 하다.

지난해 우리는 국정원 대선개입과 NLL대화록 사건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천막과 노숙투쟁, 장외투쟁으로 힘겨운 싸움을 했으나 돌아온 것은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과 반 토막의 지지율뿐이었다. 지금 또다시 세월호특별법으로 장외투쟁에 나섰으나 다수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투쟁동력을 상실한 채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국민의 의사와 배치되는 투쟁노선을 고집한 결과다. 마치 물살을 거슬러 싸우고 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이들의 부상을 묵인 방조한 책임은 계파정치에 침묵하는 나를 포함한 비겁한 당내 온건 중도세력에게도 있다. ‘내 탓이요, 우리 탓이다.’ 우리들의 침묵이 이런 잘못된 노선이 당에 퍼지고 반복되는 과오를 범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외야에 앉아 있을 뿐 우리가 마운드에 올라 패색이 가득한 게임을 뒤집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늘 당의 리더의 부재는 우리 스스로가 누군가의 팔로워가 되지 않은 데에 있다. 훌륭한 팔로워가 없이 훌륭한 지도자란 없다. 우리는 올바른 노선에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

지난날에 대한 성찰 위에서 새로운 방향설정과 대안야당의 노선정립이 필요하다. 이중적 의미에서 대안야당이다. 첫째, 국민들로부터 현 정권에 대한 대안으로 인정받아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수권정당으로서의 대안야당이다. 둘째,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노선과 정체성을 반듯이 한 대안야당이다. 

시대가 변했다. 변해도 크게 변했다. 우리는 지금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변화의 속도에 여당에 뒤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連戰連敗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제대로 한 일이 없는 여당과 대통령에게 승리를 갖다 바치고 있다. 변화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노선과 전략이 필요하다. 

20년도 더 지난 민주 대 반민주 시대의 투쟁노선과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때의 독재정권은 야당에게 타도의 대상이었으나, 민주화 이후 시대에는 견제와 경쟁의 대상이다. 과거에는 진영논리와 투쟁주의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상생의 파트너십을 인정하면서 투쟁 보다는 대화와 타협 방식을 받아 들여야 한다. 지난 날 민주화라는 거대한 정치 담론이 필요했다면, 양극화 해소가 시대적 과제인 지금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지지획득 경쟁을 벌이는 정책대결이 중요하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청년실업과 노인빈곤이 현실화되어 세계 자살율 1위의 나라에서 먹고 산다는 문제는 절규를 넘어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모진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집단은 정치권 밖에 없다 그 점에서 야당은 여당 보다 한수 위다. 우리의 정치행위는 먹고 사는 문제 위에 번듯이 서 있어야 한다. 

민주화, 정보화가 진전된 지금 정치권은 국민의 반 발짝 앞에서 국민과 함께 가는 대중노선을 철저하게 견지해야 한다. 실시간 쌍방향 의사소통 방식이 이뤄지고 4000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국민을 가르치려는 자세는 지극히 위험하고 불순하기 조차하다. 

국민의 삶의 향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되 중도·합리적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어나가는 정치노선이 필요하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중도진보주의 노선이다. 이에 입각하여 정치투쟁을 자제하고 민생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치적 갈등과 정쟁거리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고 최소화해야 한다. 안보문제는 남북 대치상황과 국민정서를 고려하여 중도보수적 노선을 견지할 수도 있다. 이점에서 야당은 이중지향성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모든 정치행위는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것을 대원칙으로 해야 한다.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춰서, 국민만 바라보고 나가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야당은 진보개혁적인 시민단체와는 다른 독자적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고 우호적 관계를 가져가야 하지만 정당은 모든 행위에 대해 결과로서 국민에게 책임지는 책임정당이어야 한다. 정당은 정당이고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다. 시민운동과 정당정치는 구분되어야 하며 과거 관성에 젖은 ‘운동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진보정당들에 끌려가서도 안 된다. 타 정당들과의 정책공조나 연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야권연대라는 미명하에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들과의 연대나 단일화에 매달리는 것은 더 이상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우리의 독자성을 명확히 하되 필요한 경우 부분적인 연대공조를 하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끌려 다니는 정당에는 희망이 없다. 국민은 끌려 다니는 지도자에게 정권을 맡기지 않는다. 진영의 논리와 정파적 이해에 움직이는 정치에 두 번 속을 국민은 없다. 국민이 우리를 불안해한다면, 애국애족 하는 마음을 의심한다면 우리당의 집권은 요원하다.

이상이 우리가 지향하는 새로운 방향, 새로운 노선, 대안야당의 길이다. 대안야당 노선이란 중도진보주의에 입각한 대안정부 준비노선이다. 국민은 우리의 진보에 희망을 걸고 중도에서 안도한다. 건강한 보수세력과 생산적 경쟁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우리의 힘으로 국민을 믿고 올바른 노선이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뤄질 수 있다. 명량에 나온 대사 하나를 인용한다.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자!” 용기는 잔도(棧道)가 없는 사람들이 절망의 벼랑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두레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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