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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윤 칼럼] 중랑천 새끼돼지
상생과통일 포럼 조회수:1270
2016-03-14 13:14:00

큰 물 지면 다 떠내려간다. 스티로폼 같은 쓰레기만 떠내려가는 게 아니다. 쓰레기 아닌 것도 섞여서 휩쓸려가니 문제다. 그래서 홍수가 무섭다. 작년 여름, 큰 물 진 서울 중랑천에서 새끼돼지 떠내려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상류 어디쯤 돈사에 큰 물이 들어 떠내려왔을 터이다. 생계였을 새끼돼지를 잃은 주인 마음이 어땠을까.

총선 공천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른 가운데, 곳곳이 시끄럽다. 정치염증이 커질수록 국회의원 총선거를 4년 주기 ‘구악-구태 대청소’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잇따라 전해지는 각 당의 공천결과를 보면 이번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 하다. 당 사정들이야 저마다 다르지만, 현재까지로는 오십보백보다. 옥석을 골라 ‘깜냥’을 내보내기 보다는, 누구를 공천해야 자기 세력을 확대하거나 유지할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둔 권력투쟁으로 점철되기 일쑤다.

권세 중에 으뜸이 사람 고르는 권한이다. 삿된 마에 끼지 않으려 ‘계영배’(戒盈杯)를 곁에 두더라도 눈이 조금씩은 흐릿해지나 보다. 하긴, 권력의 최대 속성이 쥔 순간부터 중독이 시작되고, 급기야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니 그닥 새로울 일도 아니긴 하다.

어쨌거나 공천결과가 발표되면서 어느 동네고 간에 시끄럽다. 항의시위는 기본이고 하루 아침에 돌아서서 안면몰수하고 종주먹질해대거나, 뒤늦은 곡소리로 읍소작전도 편다. 더민주당의 서울 어느 지역구에서는, 컷오프된 현역 중진의원이 공천에 마지막 ‘힘’을 발휘한 모양이다. 그런 소문이 돌자 어느 예비후보가 뒤늦게 그 현역의원 집 앞에서 무려 17시간이나 기다렸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단다. 그 지역구에는 거론조차 되지 않던 사람이 전략공천됐다. 17시간과 문전박대와 내려꽂기. 이런 게 시스템공천은 아닐 게다.

혀를 끌끌차며 “순진하다”는 소리가 돌아오겠지만, 시스템공천이니 상향식공천이니에 “혹시나…” 했던 사람들은 여지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일쑤다. 국민대표이자 권력원천의 후보자들이 이런 검품과정을 거쳐 매장에 진열돼도 좋은가 라는 근본적 회의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

“선거란 우의마의(牛意馬意)가 불가피하다”는 말은 체념의 다른 표현이다. 이런 체념이 정치혐오를 낳고, 정치혐오는 무관심을 부른다. 무관심은 포승이 되어 일상을 옥죈다. 옥죄인 일상의 다른 이름이 ‘헬조선’이다. 정무적 판단이자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의 ‘사천(私薦)’은 한국 정치의 오랜 악순환이자 부메랑이고, 딜레마다. 이 딜레마의 원천은 정치혐오 유발자들이다.

강은 홍수지고 나면 맑아진다. 바닥이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강이 아니다. 바닥에 흡착된 쓰레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웬만한 홍수로는. 쓰레기만 골라 쓸고내려가는 ‘스마트 홍수’는 정녕 불가능할까? 입력된 방대한 데이터로 수를 찾는 ‘알파고’가 아니므로 유감스럽지만 불가능하다. 어차피 최상이나 지선(至善)이 불가능하다면, 쓰레기 아닌 것들의 일부 손실이 불가피하더라도 큰 물 왕창 져서 쓰레기는 확실히 치우는 게 차선이라고들 한다. 일견 옳다. 그러나 쓰레기치우다 새끼돼지까지 떠내려가는 건 막아야 한다. 마지막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그 대책이 제방이다. 없이 사는 사람들 가재도구나 새끼돼지를 쓸고가버리는 얼치기 홍수는 제방으로 막아야 한다. 제방 쌓으려면 동네사람들이 한 날 한 시에 모여, 동네 전체를 살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작업해야 한다. ‘한 날 한 시’와, ‘동네 전체를 위해서’가 핵심이다. 중구난방으로 제 편한 시간에 나와 제 집 앞에만 모래주머니 너댓 개 포개봐야 제방은 턱도 없다. 그렇게 하면 빈 곳으로 물이 들어 결국 제 집은 물론 이웃집까지 침수된다. 그래서 중랑천 새끼돼지가 애처롭게 비명지르며 떠내려간 거다.


(이강윤. 언론인. lkypraha@naver.com)

전) 동아일보 기자. 문화일보 부장.
전) <이강윤의 오늘>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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