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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인터뷰] 조민 전 통일연구원 부원장 “북한 7차 당대회는 변화보다는 회귀와 답습에 무게중심 둔 대회”
상생과통일 포럼 조회수:838
2016-05-23 17:13:00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주도적인 입장과 대안 제시해야”

<폴리뉴스>와 월간 <폴리피플>은 지난 19일 통일원구원 부원장을 역임하신 남북문제 전문가 조민 교수를 모시고 7차 당대회 이후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 전망에 대한 견해를 듣는 자리를 가졌다. 조민 부원장은 북한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이었던 지난 해 7차 당대회를 가지려 했으나 대내외적 사정으로 인해 올해 당대회를 개최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번 당대회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핵보유국을 대내외에 선포하면서 이를 당 강령에 명시한 점이고 총체적으로는 ‘변화’보다 ‘회귀와 답습’에 방점이 찍혔다고 보았다. 경제문제에서도 5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 이외에 특별한 내용이 없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남북문제, 통일문제에 있어 전쟁불사를 언급하고 남북 군사회담을 제의했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움직인다고 보고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방어적인 수사로 보아야 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군사회담을 제의한 것은 휴전선 확성기나 대북삐라 살포 등이 주는 압박이 상당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민 교수는 북미관계 등에서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 북한이 지난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36년 만이고, 김정은 체제 5년이 지나 7차 당대회를 개최했다. 그 배경과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북한은 5월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36년 만에 개최된 제7차 당대회를 마무리했는데 이번 당대회를 통해 '김정은의 북한(DPRK)', ‘김정은의 조선노동당’을 대내외에 천명하면서 김정은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선포했다. 이번 당대회의 관측 포인터는 핵보유 입장의 공식화 위에서 대남·대외 정책의 방향, 경제발전 전략, 그리고 당 조직·인사 부문의 정비 등에 있다고 본다. 제7차 당대회를 총평한다면 변화보다는 ‘회귀와 답습’에 무게 중심을 둔 대회였다. 당대회 결정문에 표현된 ‘김일성-김정일주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연방제’, ‘세계의 비핵화’ 등 언급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구태(舊態)한 정책 노선을 답습한 것일 뿐 ‘김정은 식’ 새로운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또 ‘경제·핵 병진’을 전제로 ‘자강력제일주의’와 같은 자립경제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경제개발구 활성화 등 대외경제 관계 발전을 목표로 제시하여, 노선과 현실 사이의 상호 모순적 괴리도 드러났다. 요컨대 당의 이념과 기본 방향이 과거 회귀적이었고 새로운 미래 지향적 발전전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은 이번 대회를 ‘승리자의 대회, 영광의 대회’라고 자평하였는데, 이는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단일지도체계를 수립하면서 ‘승리자의 대회, 단결의 대회’를 선언한 점을 연상시킨다. 이번에는 소련 붕괴 이후 ‘우리식 사회주의’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 미사일강국으로의 지위를 획득하고 과시하게 됐다는 차원에서 승리를 자축한 것으로 이해된다.

- 그런데 36년 동안 개최하지 않았던 당대회를 올해 개최한 것은 다른 어떤 특별한 계기나 배경이 있었나.

사실 당대회는 건국70주년이 되었던 2015년에 개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오히려 작년에 개최하지 않은 것이 좀 자연스럽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36년 동안 당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동안 당대회를 개최할만한 내부적인 역량이나 보여줄 것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김정일 시대 17년은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당대회를 할 만한 조건이 되지 못했고 당대회를 한다면 당 강령이나 규약도 수정을 하고 근본적으로 당 지도체제가 바뀌어야 당대회를 할 것인데 그런 상황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당대회를 개최를 늦출 수 없었던 것은 김정은이 새로운 시대를 선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김정은은 지금까지 통치기간이 약 7년 반 정도가 되는데, 지난 2008년 8월 김정일이 쓰러진 이후 2009년 벽두부터 본격적으로 김정은을 지도자로 추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기까지 아버지 시대 3년 동안 충분한 후계자 수업을 거치면서 전면에 서서 통치를 했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나이가 어리지만 확고한 통치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여러 자식들 중에서 김정은이 과단성이 있어서 후계자 구도에 적합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런 속에서 4년을 보내고 사실 작년에 당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적절했다고 보는데 지난 해 대내외적 상황과 사실은 경제부문에서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 등으로 인해 올해로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

- 이번 당 대회를 통해 북한은 김정일 시대의 선군통치에서 벗어나 당이 국가의 최정점에 놓이는 정상적인 체제로 자리를 잡았다. 권력서열을 알 수 있는 정치국원에도 군 출신의 퇴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어떤 의미인가.

선군정치는 김정일 시대 17년간의 통치방식을 상징하는 말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과 함께 들이닥친 재난 즉, ‘고난의 행군’ 3년 시기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국가위기 상태에 봉착했는데, 사회주의 분배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자연재해와 기아로 숱한 아사자가 나왔고 대량 탈북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김정일은 이러한 혼란 상태를 극복하고 체제를 유지하는데 믿을 데는 군뿐이라고 여겼다. 그즈음 북한 지도부를 소집한 비공개 자리에서 김정일은 당이 “부패하고 무능하여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 당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발언들이 나중에 알려지기도 했다. 혼란과 무질서를 수습하기 위해 자연히 군을 앞세운 비상계엄통치 방식이 불가피했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군이 수령의 최측근 그룹이 되었고 특히, 국가 재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군이 자립적 기반을 갖도록 하기 위해 외화벌이를 위한 광산, 농장․목장․어장 경영과 개별 군 단위 사업체를 허용함으로써 경제적 측면에서도 군이 특권․특혜층이 되면서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국가 재정과 인민 생활을 책임지는 당과 정부의 역할과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군은 사회적 발전과 미래를 담보하는 집단이 아니다. 위기상황에서 군이 특혜․특권 위에서 국가재원과 자산을 파행적으로 독점하는 동안 시장영역이 확대되면서 인민경제 부문을 더 이상 외면하거나 방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군이 뒤로 물러나고, 국가발전과 인민 경제를 책임지는 당이 전면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선군통치를 넘어 당 중심 체제로 복원되면서 김일성 시대의 당 체제를 상당히 고려한 모습으로 재정비되고 있다.

북한에서의 권력 서열은 절대자인 수령의 신임과 활용 방식에 따른 자리 배치로 볼 수 있다. 선군정치 시기에도 군이 정치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당을 불신한 김정일은 군을 우대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용인술로 수령에 충성스런 군을 만들었고 총정치국을 정점으로 군을 철저히 통제하는 메커니즘이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경우 군 출신이 아닌 당 조직지도부 사람이었고, 그 이전 최룡해는 2012년 4월 11일에 열린 제4차 당대표자 대회에서 당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함께 군 총정치국장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그도 군과 별로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선군정치 시기에는 군에게 이권사업을 허용하고 관대했는데, 이러한 이권사업체가 김정은 시기에 하나씩 당 관리 사업으로 넘어왔다. 이번 조직 및 인사 개편에서는 군에 대한 우대 또는 특별 배려가 별로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군은 본연의 위상과 임무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당 조직 개편에서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을 없애고 정무국을 신설한 점이 눈에 띄고, 그와 함께 당의 3대 권력구도는 정치국, 정무국, 당중앙군사위원회로 정비되었다. 당 비서들은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직제가 바뀌었다. 1966년에 10월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제가 폐지되고 총비서와 비서 등으로 개편하였는데, 이번 당대회에서 50년 만에 비서국을 없애고 정무국을 신설하여 김정은 위원장 아래 9명의 부위원장을 선임했다. 비서국이 정무국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위상과 역할에서 큰 차이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당 비서가 구소련식 명칭이고 또 김정은 ‘제1비서’라는 지금까지의 직함이 어정쩡했다는 점에서 비서직 자체를 폐기하고 오히려 1966년 이전의 직제로 돌아간 것으로 이해된다.

- 이번 7차 당대회에서 강조된 것이 핵, 경제, 통일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군의 퇴조를 북한은 이미 핵은 보유한 것으로 선언을 했으니 이제는 경제에 좀 더 강조점을 두겠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나.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는 위기관리 체제라고 볼 수 있는데 군을 중심으로 하는 비상계엄 상황체제였는데 그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면서 군이 지나치게 경제적 이권체가 되면서 비대화된 측면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 사이에 시장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인민 부분이 급속하게 성장을 했다. 이렇게 성장한 인민부문을 정부와 당이 직접 대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군은 이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야 하고 또 군이 장악하고 있던 여러 가지 사업체, 이권 등은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당으로 이관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몇 년 사이 진행된 작업이었다. 그와 함께 인민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의지나 정책들을 전면에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사회전체를 기획하고 관리할 수 있는 당의 역할이 부각되고 강조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라고 본다.

- 지난 1980년 개최되었던 6차 당대회에서는 통일문제에 대해 평화적 전도를 강조했다면 이번 7차 당대회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이 제도통일을 계속 시도할 경우 전쟁도 불사할 것이란 시사를 하기도 했는데?

이참에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남북한 급격한 국력 차이의 현실에서 사실 통일 문제에 대해 일찌감치 입장을 바꿨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의 모태이다. 여기서 김일성은 남과 북의 “다른 사상과 제도가 인정되는” 방식의 연방제 추진을 주장했는데, 이는 연방제라는 명칭아래 남과 북 각각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체제를 인정하면서 통일정부 형태로 ‘최고민족연방회의’와 같은 민족통일기구를 함께 구성하자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통일논리라기 보다는 사실상 분단국가 체제를 유지하자는 얘기라고 볼 수 있다. 1980년 들어와 남북한 국력이 2~3배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그 후 1990년에 10배 넘게 국력차이가 나게 되는데 이 시기에 다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부연 설명하면서 “북과 남에 있는 두 제도를 공존의 원칙에서 그대로 두며… 북과 남이 지역자체제롤 실시”할 것을 주장한다. 김일성은 1991년 신년사에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 방식의 통일방안을 제의했는데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제도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조건에서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지 않고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도는 련방제 방식으로 통일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지 않고”라는 말에서 김일성의 통일에 대한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더욱이 김일성은 상대방을 먹는 것을 전제로 한 ‘제도통일론’을 적극 반대하면서, ‘제도통일’은 후대의 몫으로 미루자고 주장했다.

이처럼 90년대에 오면 연방제는 통일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체제보존의 논리로 변했고, 어느 면에서는 통일을 거부하는 반(反)통일 논리로 주장됐다. 연방제는 초기에는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으로 제기되었고 또 그러한 목적으로 주장되었다는 점에서, 탄생설화는 지극히 불순하고 불온하다. 그러나 연방제의 본질적 성격은 변했다. 이는 남북한 국력 차이와 사회주의권 몰락의 세계사적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 ‘연방제’라는 명칭은 그대로 쓰면서 통일에서 공존으로,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체제유지 쪽으로 통일론의 변화를 추구해왔다. 잠시 문익환 목사의 회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 목사는 1989년 4월에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2차례 7시간 회담을 가졌다. 당시 김주석이 연방제에 대해 설명하자, 문목사는 “그 많은 것을 한 번에 다 할 수 있겠느냐. 중간 단계를 넣자”고 제안했고, 이에 김주석이 찬동하였다고 밝혔다. 바로 이 ‘중간 단계’가 무척 의미있는 말이다. 그때 김일성은 “그 구체적 실현방도는 단(한)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하여 일단 한 발짝 물러났는데, 이 과정에서 북측은 남측의 ‘점진적 변화’ 주장을 처음으로 수용했다고 여겨진다. 북한의 연방제는 사실 1990년대 전까지는 외교 및 군사권을 가진 중앙(연방)정부 중심의 논리로 주장되었는데, 이러한 연방정부 구성은 남북한 현실에 비춰볼 때 비약적인 형태로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에 김일성은 연방제 실현의 비약적 측면의 한계를 인정하여 1991년 신년사에서는 외교권과 군사권을 남과 북의 지역정부에 위임한 이른바 ‘느슨한 연방제’를 제안하게 된다. 바로 이 ‘느슨한 연방제’가 10년이 지나 2000년 6월 남북공동선언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되살아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1990년 이후 북한의 연방제는 통일론이 아니고 체제유지를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 이 본질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제도통일’을 한사코 거부한다는 말은 이미 할아버지 김일성이 분명히 밝힌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지 않고”라는 주장과, ‘제도통일’은 후대의 몫으로 미루자고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셈이다. 통일 문제에 대한 변화는 전혀 없다. 북한 통치층이 현실을 모르는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통일을 실질적으로 추구할 수 있겠나? 남측의 통일 의지나 실질적인 통일 정책 추진을 흡수통일 방식인 제도통일로 보고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정은의 북한은 통일보다는 ‘두 개의 한국’을 분명히 하는 입장이다. 김정은이 통일을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힌 것은 오히려 남한이 흡수통일에 기반한 제도통일을 추진한다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본다. 북한은 남한 당국이 정보 차원에서나 혹은 인권 등으로 국제공조를 통해서 북한 사회의 붕괴를 획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발로라고 보인다.       

- 북한 7차 당대회에 대한 정부나 언론의 입장은 ‘새로운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북한 김정은이 남북 군사회담을 제의한 것에 대해서도 상투적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북한의 변화에 대해 너무 피상적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북한이 남북 군사회담을 제의한 배경은 간단하다. DMZ 내에서의 확성기 방송, 삐라살포 등 북한의 안보 차원에서 위해 요인이 상당한 행위를 자제시키려는 전술적 차원의 제의라고 본다.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구축, 궁극적인 군축 문제 등 실질적인 상호 위협을 축소하는 군사회담을 생각하고 있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논쟁적인 사안으로, ‘반병의 물’이 남았다고 보는 것과 반병이 없어졌다고 보는 입장과 유사하다. 어느 방북 인사는 “북한이 상당히 변했다. 몇 년 전과는 아주 다르다”고 강조한다. 또 어떤 사람은 “아직도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이 경우 서로 접점을 찾기는 힘들다. ‘변화’는 철학적으로 ‘본질과 외형’ 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사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아시다시피 북한에서 시장 영역이 활발해졌고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평양의 풍경이나 인민 생활의 내용은 계속 바뀌고 있고 북한은 외형적으로 어제오늘이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수령독재체제, 핵보유 의지와 전략, 대미․대남 정책, 인권과 민주주의의 전망 등의 북한체제의 본질적 차원에 과연 변화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르다. 시장의 확대가 가져온 인민생활과 사회적 변화가 정치체제와 이념 수준까지 본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데 착안해 보면 즉, 양적 또는 외형적 변화가 질적 변화내지는 내면적 변화를 가져오는가 하는 문제로 얘기해 볼 수 있겠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누구나 김정은 시대가 김정일 시대보다 훨씬 살기 좋아졌다고 한다. 우선 이러저러한 간섭이 덜한 편이다. 김정일은 체제위기 상황에서 탈북자를 처단하는 등 인민을 대상으로 엄혹한 통치를 했다면, 김정은은 인민을 포섭대상으로 여겨 인민 생활 향상을 고심하는 입장이다. 김정일 통치와는 반대로 군부 등 상충 엘리트에 대한 처형은 많아졌지만, 인민에 대한 처형은 매우 줄어든 모습이다. 이런 점도 변화라면 또 큰 변화이다. 특히, 성공할 것인지 여부와는 별도로 체제 차원에서 지령경제 형태인 중앙계획경제와 시장과의 공존을 전제로 체제역량을 제고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당대회에서 박봉주 내각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 우리 사회 내부에는 여전히 북한 붕괴론을 전제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고 특히 대북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하는 정부의 핵심관계자들조차 이런 시각으로 대북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같은데? 

그렇다. 우리 사회의 대북인식이나, 대북정책에서 합리적 접근을 가로막는 주장이 “북한이 곧 무너진다”는 북한붕괴론이다. 과거 김일성이 죽으면 3초에서 길게는 6개월 안에 북한이 무너진다고 큰소리친 전문가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미국의 정보 당국이나 국방부 등에서 나온 붕괴론이 주목된다.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김정일이 사망하면 곧장 북한이 붕괴한다는 하면서 절대적인 신념 차원에서 북한 붕괴론을 확산시켰는데, 미국 사람들 얘기라면 무조건 맹종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붕괴론에 크게 공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쨌든 북한 붕괴론을 계속 얘기하는 한 진지한 대북 협상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더욱이 특정 국가체제의 붕괴에 대한 개념적 이해조차 없고, 만약 북한이 붕괴한다면 어떤 현상이 전개될까 하는 문제에 대한 구상력도 전혀 결여되어 있다. 이런 붕괴론은 단세포적 인식, 아메바적 사고방식에 불과하고 ‘폭력적’ 사고의 한 형태이다. 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붕괴론에서 정책적 사고를 기대할 수는 없다.

- 이번 당 대회 결과를 보면 북한이 중국 주도의 6자회담 틀로 복귀하거나 북미협상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는 한마디로 말해 미국과 북한과의 문제이다. 북한은 2012년 헌법과 이번 당대회에서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더욱이 “핵 선제불사용(No First Use), 핵전파 방지 의무 이행, 세계비핵화 실현 노력” 등 핵국가 3대 운영원칙을 천명했는데, 이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공인된 핵보유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라는 이른바 5대 강국의 입장과 유사하다. 이를테면 북한 스스로 책임 있는 핵보유국 지위를 천명한 셈인데, 논리적 측면에서는 우습게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 모두 시비걸기 힘든 난처한 입장이다. 지금 북한과 미국 양자는 협상 자체를 전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 주도의 협상 구도를 만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미국은 대북제재와 압박 수준을 한층 높여 북한의 굴복을 전제로 협상에 임하고자 하는 입장이고 북한은 북한대로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통해 미국의 위기의식을 자극하여 대미전략을 관철시키고자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북한은 금융제재, 해운제재 등의 높은 수준의 제재에 그들의 전략적 셈법을 바꿀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마이 웨이’를 외치면서 위기국면을 한층 고조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측 포인터이다.

제재강화 전략이나 북한의 되받아치기 전략 모두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보이고 양자 모두 전략적 갑(甲)의 지위를 바라는 입장이다. 대북제재에 중국의 입장이 관건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아는 얘기이고, 러시아의 입장도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국면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에 러시아의 역할이 뒷배경이 되고 있는 점이 드러났고, 안보리에서 러시아는 대북제재에 상당히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결코 달가울 리 없다. 더욱이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포위전략인 재균형 전략이 지속되는 한 중국의 협력을 얻기 어렵고, ‘전략적 인내’는 결국 대북정책의 실패를 말해주는 것에 불과했고, 미국의 차기 정부도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저는 워싱턴에서 미국 조야의 한반도 전문가 그룹과 6차례 공개․비공개 세미나에서 얘기를 나눠봤는데, 그때마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한반도 문제를 풀 의지와 역량이 없다’고 느꼈다. 미국은 오히려 동북아 지역에서의 전통적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북의 적정한 수준의 도발과 긴장을 유발하는 것을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 .사실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산․학 복합체의 이익이 무엇이겠나? 오래되고 케케묵은 얘기 같지만 본질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사실이다. 한국은 제재 속 협상 국면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간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우려스러운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고, 더욱이 북미 간 모종의 협상이 갑자기 알려질 수도 있다. 미․중 간 전략적 모멘텀과 방향 등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우리가 배제되는 상황을 회피해야 한다. 그와 함께 제재국면에서도 대북 대화․협상 국면으로 전환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 북미간에 거론되고 있는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시나?

평화협정 문제는 다시 살아날 불씨이다. 지난 5월 초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DNI)이 비공개로 방한하여 우리 정부의 관련 인사들을 만났다고 일부 언론에 알려졌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이 제7차 당대회가 끝나면 공세적인 대미전략을 펼 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중국마저 북미 평화협정 논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판국에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논의할 경우 한국은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문의가 있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중앙일보, 2016.05.07). 이는 미국이 평화협정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데, 마침 올해 미국의 대선 국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초래할 국내정치적 부담도 있고 해서 일단은 북한 변수를 봉합해야 할 필요성에서 평화협정 문제를 검토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떠보는 시도로 보인다. 평화협정은 미국의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길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의 주도적 입장과 대안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에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통일 문제를 풀어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생각이 문제이다. 이제 동맹국 미국이 조수석에 앉고 우리가 핸들을 잡고 운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런 점에서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평화협정을 끌어낼 수 있는 우리 한국의 전략적 스탠스가 매우 중요하다.

- 지난 4.13 총선 직전에 집단 탈북을 했다고 알려졌던 북한 해외 식당종업원의 경우 탈북 경위를 놓고 말썽이 일고 있다. 이들과의 면담 문제를 놓고 민변과 국정원이 대립하고 있고 북한 당국에서도 기획 납치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북한 문제를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고 싶은 의도를 자제하기가 참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 붕괴론이 그럴듯하게 들리려면 북한 통치층 내부의 균열이나 소음이 우리에게 들려야 한다. 숙청, 권력충 내부의 암투 이런 얘기는 어느 국가나 무너지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 않겠나? 그러한 바람 즉, 희망적 사고가 확인되지 않은 불확실한 정보를 자기도 믿고 싶어 하고 또 정부 고위층의 귀를 즐겁게 하니 자연히 국민에게 알리라는 지시가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신뢰받고 아낌을 받아야 할 국가의 주요 기관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셈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우리 속담이 생각난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 공교롭게도 어떤 관계가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는다는 얘기이다. 마침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탈출 입국 시기가 총선 직전이라는 점에서 ‘오비이락’ 속담처럼 오해를 살만한 점도 없지 않다. 그런데 최근 평양에서 그분들의 가족들이 우리 정보기관의 기획이라고 비난하면서 가족 면담을 요구했다. 그리고 민변이 12명의 자유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접근을 요구하였지만 국정원이 거부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국가 차원에서의 비인도적 행위는 그동안 북한의 전유물로 생각해 왔다. 북한은 ‘혁명’이라는 목적의 정당성 앞에 수단의 정당성은 문제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도덕은 문명사회의 보편적인 규준과 다르다. 인권, 인도적 사안은 어떤 숭고한 목적과도 타협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이다. 우리 정보 당국이 탈출 입국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2인의 ‘자유의사’에 반한 기획을 했으리라 믿고 싶지 않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은 민변에 당당하게 그분들의 진정한 자유의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북한은 당 대회 이후 대남 대화 제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고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문제를 풀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보나?     

 박근혜 정부는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제재와 압박이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전략적 셈법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제재 강화 이외 딴 목소리는 매우 듣기 거북한 말이 된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전제인 국제공조가 사실상 가능한가, 또한 두 나라가 협력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공조체제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제4차 핵실험으로 초래된 제재국면이 아무런 결실 없이 흐지부지해지고 마는 상황은 매우 곤란하며, 북한에게 아주 나쁜 메시지를 주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미국은 대선 국면에서 북한 문제로 인한 국내 정치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북한 달래기’ 수준의 적정한 타협을 모색할 수도 있다. 여기에다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여 긴장 국면이 봉합되고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는 장면을 예상해야 한다. 우리가 국제정세를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강대국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지금 4년 차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의 추진 동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지만, 우리와 다른 관련국들의 입장과 그리고 그들의 전략적 선회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 이에 대비해야 할 때이다. 그와 함께 대북 메시지를 새롭게 단장할 필요도 있다.

- 지난 4.13 총선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야당이 지나치게 남북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움추려 든 곳이 아니냐는 지적들이 많다. 총선에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야당이 남북관계 퇴행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시나?

북한은 실패한 국가이고 나쁜 체제라는 명제에 대해서 동의한다. 그런데 이런 실패하고 나쁜 체제인 북한과 손을 잡고 대화 협력해야 한다. 이런 모순적 명제가 성립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보아야 한다. 북한이 나쁜 체제이고 실패한 국가이고 '악의 제국'이기 때문에 붕괴를 기다린다는 한국의 보수 우파나 보수 정부의 태도도 틀렸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강조했던 것이 야당의 입장이고 범 진보진영의 입장일 것인데 이들은 왜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해야 하는지 설명을 잘 하지 못했다. 이런 입장을 취할수록 북한에 대한 인식이 냉정해야 한다. 북한은 잘못된 나라이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대북인식의 측면에서 야당이나 범 진보세력이 일반국민으로부터 의혹을 사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지난 4.13 총선에서는 여야 모두 통일문제에 대한 전문가나 영향력이 있는 인사가 진출하지 못했다. 이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상황이고 분단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할 정치권이 이 문제를 외면한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처사로 보인다.

대선국면에서는 반드시 통일문제, 남북관계 문제에 대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야당은 먼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북한의 실정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평균적인 인식과 시각에 맞춰야 하는 측면이 있다. 북한은 바람직하지 못한 체제이고, 북한이 독재체제이고 세습체제이며 북한이 인권문제를 안고 있고 북한의 핵 문제는 틀렸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북한과 손잡고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미래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인식의 부분에 있어 우리 야당이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에서 크게 달라지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더민주당에서 이제 우리도 북한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달라진 모습이라 생각한다. 과거 서독이 동방정책을 펼칠 때도 동독에 대해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을 했다. 비판을 하면서도 협력하고 지원을 한 것이다. 우리도 북한의 현실에 대해서 비판할 것은 해야 한다. 그렇지만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대화하고 협력할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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