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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윤 칼럼] 컵라면과 생리대
상생과통일 포럼 조회수:1134
2016-06-01 11:32:00

뜯어보지도 못한 19세 김 군의 컵라면.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학교에도 못 가고 집에 누워만 있는 여중생. 화장실에서 초면의 사람에게 영문도 모른 채 흉기에 찔려 죽어간 20대 여성. 방이 건조해 켜놓은 가습기에 죽어간 신생아와 그 가족들. 2년이 지나도록 침몰원인은 커녕 시신 수습도 끝내지 못한 채 한을 풀지 못하는 304명 세월호 가족들. 곳곳에 쌓이는 추모 포스트잇과 흰 국화와 노란 리본.

원인이나 진상을 채 규명하기도 전에 반복되는 이 억울한 죽음들. 그 반복 앞에 수습과 재발방지라는 단어는 사치스럽기 그지 없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최소한의 인간 생존조건 조차 보장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의 ‘민국’은 뭔가. 이러고서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중앙 정부와 해당 지자체를 비롯해 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들, 작동은 하고 있는가. 아니 있기는 한가.

세금은 어디에 쓰이는가. 정부를 작동시키는 공무원들은 무슨 생각으로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아니, 일을 하기는 하는가. 선거로 뽑힌 국민의 대표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가. “우리 부 업무가 아니고 저쪽 소관이다” “내 지역구 일이 아니니 (나의) 재선에 영향있는 건 아니다” 같은 소리만 몇 십년 째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리대가 없어서 며칠 째 학교도 못가자 무슨 일인지 걱정된 담임 교사가 학생 집을 찾았다가 사제간에 부둥켜 안고 그저 울 수 밖에 없을 때 당신들은 어디서 뭘 했는가. 김 군이 일 사이 사이 허기라도 끌 요량으로 컵라면 하나 가방에 넣고 목숨걸고 일 할 때 당신들은 어디서 뭘 했는가. 빈곤층 잘 챙겨보라고 문서에 사인이나 하면서 책상에 앉아 펜대만 놀리지는 않았는가. 김 군이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작업할 때 정규직 높은 자리들은 입으로만 안전규칙 준수를 되뇌이다가 하청 수리업체에 임원으로 내려가지 않았던가. 이제 겨우 소년 티를 벗은 ‘김 군들’이 고용유지가 안될까봐 노심초사하며 “갓 졸업한 공고생 자르는 게 청년일자리 정책인가”라는 피켓들고 하소연할 때 노동부장관은 어디서 뭐했는가. 서울메트로 고위직들은 퇴임 후 옮겨갈 자리나 알아보고 있지는 않았는가.

서울지하철 1~4호선의 스크린도어는 총 7700개. 113명의 김군들이 관리한다. 1인당 68개. 1~4호선은 상대적으로 노후화돼 고장이 잦다. 일거리가 오죽 많았으면 김 군은 사발면 먹을 시간을 아끼려 소형 플라스틱 숟가락 대신 후루룩 빨리 먹을 수 있도록 큰 숟가락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김 군 어머니에 따르면, 일 마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밥은 커녕 옷도 갈아입지 못 한 채 쓰러져 자기 바빴다. 공구 가방 속 컵라면 봉지도 뜯지 못하고 비명 횡사한 다음 날이 김 군 생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자 서울메트로 어떤 고위직은 “안전수칙을 어긴 건 현장”이라며 김 군 책임으로 미루는 듯이 말했다. 안전수칙을 지키고 있는지, 안지켜지면 왜 그러는지를 관리하고 대책 세우라고 높은 자리 앉히고 월급 많이 주는 것 조차 모르는 사람이 관리자였다.

각 당 지도부는 사고 터진 후에야 검은 넥타이에 알량한 국화 한 송이 들고 지하철역에 나타나 “박원순 책임이다, 아니다 나라 책임이다” 류의  하나마나한 입씨름만 늘어놨다. 친박-비박 싸우느라, 국회의장 해보겠다고 손편지 쓰고 의원들 집 찾아다니느라 김 군들이 보이기나 했겠는가. 심지어 제3당의 대표는 트위터에 “(김 군이)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 모른다”고 적었다. 그의 예리하고 고상한 사고원인 분석에 박수라도 쳐주라는 말인가.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굳이 비트겐슈타인이나 촘스키를 빌지 않더라도, 말은 의식의 반영이다. 평소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말이나 글이다. 국가기능의 상실과, 생존조건의 실종을 두고 고작 “여유”를 운운하는 대권 주자에게 또 한 번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다. 

유엔사무총장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나무 심고, 사진 찍고, 충청의 맹주였다는 노정객 만나 수인사인지 눈도장인지를 찍고,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할 때 김 군은, 여중생은 ‘민국’의 국민으로서, 아니 권리라고 할 수도 없는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가난 때문에 신음했다. 죽었다.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걸고 “수권정당”을 외칠 때 소년소녀들은 울 틈도, 울 힘도 없이 그저 방치되고 있었다. 거기다 대고 “여유가 조금 있었더라면” 같은 말을 위로랍시고 내미는 후안무치를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대한민국은 ‘민국’이 아니다. 국가가 아니다. 근대 시민사회? 흙수저와 헬조선이 상용어인 봉건사회다, 아직.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약육강식의 야만 그 자체다. 선진? 말도 꺼내지 말라. ‘사람’에 대한 공부 부터 다시 하고, 우선 ‘민국’을 만들 일이다. 선진은 한참 뒤의 일이다. 투표 백날 하면 뭐하는가. “4.13 민심 받들겠다”고 대문짝만하게 적힌 신문에는 아직 잉크 냄새도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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