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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월의 폭탄’ 연말정산이 던진 숙제
상생과통일 포럼 조회수:1121
2015-02-03 12:23:00

진보와 보수가 마주친 국민들의 ‘조세 저항’

연말정산 파동과 조세 저항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큰 숙제를 남겼다. 보수는 재정 파탄 위기와 조세 저항이라는 딜레마에 갇혔다. 진보는 복지국가 전략이 작동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부딪혔다.

 

연말정산 파동 국면을 통과하며 여야 정치인들은 오래된 교훈을 새로이 되새겼다. 조세 저항은 한국 정치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놓인 여론의 명령이다. 조세 저항에 부딪힌 정치세력에는 미래가 없다. 정부와 여당이 연말정산 보완책을 소급해 적용하기로 한 것은 조세 저항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은 2013년 8월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 파문의 연장선상이다. 당시에도 정부는 ‘중산층 증세’ 논란이 일자 곧바로 보완책을 내놓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이때 개정된 세법이 적용된 결과가 올해 연말정산에서 조세 저항으로 터져 나왔으니, 당시의 보완책도 결국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민주화가 되기 전인 유신 시절(1977년) 박정희 정권은 부가가치세를 신설했다가 거센 조세 저항에 부딪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래서일까.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 있는 증세에는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 후보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초현실적인 구호를 내세웠다. 2013년에도 박 대통령은 증세 논란이 일자 나흘 만에 직접 세법개정안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며 조세 저항 조짐을 차단했다(<시사IN> 제316호 ‘증세냐 복지 후퇴냐, 빈 곳간에서 서성이네’ 참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이나 ‘문고리 3인방’ 논란에 대처하는 속도와 비교하면 광속에 가까운 대응이다.

연말정산 파동과 조세 저항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큰 숙제를 남겼다. 보수의 숙제는 스스로의 무능에서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집권 7년을 거치며 나라 곳간이 비다시피 했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게 빠른 국가다.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재정 지출이 갈수록 큰 폭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이에 맞춰 새로운 재정 전략이 등장했어야 하는 지난 7년 동안 두 보수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세적 감세 정책으로 아예 반대 방향을 잡았다.

21세기 들어 한국의 조세부담률(GDP 대비 조세 비율)은 평균 19.6%다. OECD 평균인 25.5%와는 차이가 크다. 한국이 OECD 평균 수준으로 세금을 걷는다면 국세와 지방세를 합쳐 지금보다 70조원 이상을 더 걷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를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의 대응도 갈팡질팡한다. 무엇보다 가계부를 못 맞춘다. 2013년에는 세금이 원래 예상보다 10조9000억원 덜 걷혔다. 2014년에는 11조원(기획재정부 추산)에서 최대 13조원(국회 예산정책처 추산)이 ‘펑크’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세수 예측치 대비 10% 이상이 증발하는 ‘가계부 부도 사태’가 매년 되풀이된다.

왜 그럴까.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1월 내놓은 <2014~2018 국가 재정운용계획 분석>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경제성장률의 실적치가 전망치를 하회하면서 매년 낙관적 전망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 탈출 국면으로 성장률이 높았던 2010년을 제외하면, 매년 정부 예측치보다 실제 성장률이 낮았다는 얘기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1월23일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복지정책 후퇴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시사IN 윤무영
1월23일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복지정책 후퇴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전망치가 일관되게 낙관적인 경향을 보였다는 것은 일종의 ‘가계부 조작’ 혐의가 짙다. 특히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 해이고, 4대강 사업과 같은 초대형 재정 집행의 후폭풍으로 재정건전성이 중요한 정치 이슈로 떠오르던 차였다. 장부를 맞춰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는 의미다.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면 자연스레 세입 예상치도 오른다. 장부는 깔끔해진다. 1년 후에 만나게 될 현실이 장부와 다르다는 사실만 빼면 그렇다.

후폭풍은 2013년에 불어닥쳤다. 초대형 세수 펑크 위기에 직면한 정부는 국회에 긴급 추경예산 편성을 요청한다. 부도난 가계부를 ‘땜질’하는 추경은 국가재정법 위반 혐의가 짙다. 결국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국회 예결위에서 정부의 세입 전망이 미흡했다며 사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총리의 사과문 자구를 야당 측에 ‘결재’를 받아가면서까지 추경 확보에 필사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12조원을 세입 결손 대응용으로 받아갔다.

부도난 가계부 ‘마사지’하다 큰코다치지

보수는 재정 파탄 위기와 조세 저항이라는 딜레마에 갇혔다. 이명박 정부의 재정 탕진과 박근혜 정부의 가계부 ‘마사지’가 만난 결과, ‘보수는 부패할지언정 유능하다’라는 오래된 신화마저 해체될 위기로 몰리고 있다. 연말정산 파동 국면이던 1월23일자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박근혜 정부 지지율은 30%로, 전주 대비 5%포인트나 주저앉으며 또다시 최저치를 기록했다.

진보의 숙제는 조세 저항의 만만치 않은 위력을 다시금 실감했다는 데 있다. 복지국가로의 체제 전환은 어떤 방식으로든 증세를 동반해야만 한다. 연말정산 파동과 조세 저항은 ‘증세를 동반한 복지국가 이행 전략이 한국 현실에서 작동 가능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복지국가 블록의 기본 가설은 대략 아래와 같았다. 조세 저항은 ‘내가 왜 세금을 내야 하는가’를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째, 국가가 내 세금을 써야 할 곳에 쓴다고 믿지 못한다. 둘째, 재벌이나 고소득 자영업자와 같은 기득권층이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데 월급쟁이만 봉이 되고 있다. 셋째, 세금을 내서 복지국가를 만들면 내 삶이 어떻게 좋아지는지를 체감해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복지국가 블록의 ‘이행 전략’은 납세자에게 복지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데 주력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단 복지의 효능을 체감하면 조세 저항이 누그러질 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복지가 사회 의제로 떠오른 이후 한국의 복지 수준은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급식 복지가 정착됐고, 기초노령연금 제도가 시행되었으며, 보육도 복지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세제 개편안에서 자녀출생 공제, 다자녀 공제 등이 폐지된 것은 보육복지가 강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조세 저항 여론은 이런 ‘연결고리’를 굳이 고려하지 않았다. 둘은 사실상 별개 문제 취급을 받았다. 복지국가 블록의 핵심 이행 전략이었던 ‘복지의 효과를 느끼면 조세 저항이 줄어들 것이다’라는 가정이 흔들리는 셈이다.

‘세금정치’에는 근본적 역설이 있다. 납세자는 이익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고, 다 같이 겪는 손실보다 나 혼자만 겪는 손실에 더더욱 민감하다. 세금제도를 개편하면 이득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사회 전체로 보면 정의로운 방향으로 제도가 바뀐다 해도, 손해를 보는 사람이 강력한 반대 블록으로 결집한다는 사실이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의 발목을 잡는다. 반면 사회 전체로 고루 퍼진 이익은 지지 블록 결집을 이끌기에는 지나치게 묽다. 이들은 웬만해서는 표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구도가 되면 정치인 처지에서는 소수 강력한 반대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정의롭지는 않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이 역설은 때로 너무나 강력해서 정치를 꼼짝 못하게 제약한다. 이번 사례에 대입해보자. 소득공제는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역진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참을 수 없는 세금정치의 무능함 기사 참조),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세제 개편 방향은 원론적으로 옳다. 더 정의로운 소득재분배가 된다.

하지만 이 전환으로 이득을 보는 저소득층은 사실상 이득을 체감하지도 못하고 넘어가기 쉽다. 반면 확실하게 손해를 체감하는 상층 근로소득자들은 똘똘 뭉친 반대 블록이 된다. 이러면 정치인 처지에서는 소수의 결집된 반대자 편에 서는 것이 표에서 이득이다. 정부·여당은 소급 적용이라는 나쁜 선례까지 남겨가며 반대 블록에 연말정산 후속 대책을 부랴부랴 선물했다.

세금정치라는 전장에서 증세 전략은 이런 역설에 취약하다. 특정 계층이 증세로 당하는 손해는 피부에 와 닿고 눈에 잘 띈다. 반대 블록이 생기기가 아주 쉽다. 반면 증세로부터 받는 이득(내는 세금보다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이 더 많은 소득 중하위 계층이 수혜자다)은 간접적이고 여러 단계를 거쳐 묽게 퍼져서 온다. 증세 지지 블록이 만들어지기는 그만큼 어렵다.

이 논리를 뒤집어보면 정치인에게 감세가 증세보다 쉬운 선택인 이유도 알 수 있다. 감세 정책에서는 수혜자가 눈에 띄고 집중되어 있는 반면, 감세에 따른 재정 압박으로 타격을 받는 계층의 피해는 간접적이고 퍼져 있다.

즉, 세금정치에는 근본적인 비대칭이 존재한다. 현상 유지나 감세는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증세는 비록 그것이 사회 전체의 이득을 끌어올릴 때라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훨씬 어렵다.

‘합리적 선택’을 제어할 리더십도 전략도 없다

야당이 증세를 동반한 복지국가 전략을 강하게 추진하지 않는 것이 무지나 게으름이나 탐욕 때문이라는 관점은 그래서 정확하지 않다. 정치인의 단기적인 ‘합리적 선택’을 제어할 수 있는 리더십과 장기 비전이 없다는 지적이 더 정확해 보인다. 그런 요소들이 갖춰진다 하더라도 쉽지 않을 만큼 비대칭 구조는 강력한 제약이다. 소비세를 올렸다가 정권이 붕괴한 일본 민주당 사례에서 보듯, 세계적으로도 증세는 정권의 무덤으로 간주되곤 한다.

보수는 이 비대칭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는 판타지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현실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1월23일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나란히 ‘증세냐, 복지 철회냐’라는 전선을 들고 나왔다. 이제 막 시행 단계인 복지정책을 후퇴시키는 것은 증세보다 쉬운 길이고, 이행 전략도 아주 고통스럽지는 않다. 복지 수혜 계층이 두껍게 쌓인 단계에 아직은 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가 내놓은 대안은 그래서 ‘역진’이다. 증세 없이 재정 균형을 지키려면, 복지국가가 사회적 합의로 등장한 2012년 대선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연말정산 파동이 던진 숙제는 복지국가 블록에 더 무겁게 떨어졌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진입하려면 ‘부자 증세’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은 사회 전체가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 한걸음이 대단히 정교한 이행 전략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한, 세금정치의 근본적인 비대칭은 정치를 증세 반대로 자연스레 미끄러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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