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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헌론’이 점화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
상생과통일 포럼 조회수:1128
2014-10-23 16:50:00
[정치]‘개헌론’이 점화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
 

2016년 총선 주도권 두고 박대통령과 김무성 충돌은 불가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논의’ 발언이 박근혜 대통령과 조마조마하게 유지되던 긴장관계를 터뜨리는 격발장치였음이 확인됐다. 때 이른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간의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을 맞은 여권 전체도 한 판 세력싸움에 휩쓸릴 조짐이다.

기적으로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결국 터질 것이 ‘개헌론’을 빌미로 터진 셈이다. 이미 지난 7월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 직후부터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오는 2016년 총선일정을 감안하면 늦어도 내년 말 이전에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여권의 대표성을 두고 양단간의 결판을 내야 하는 정치적 절차를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차기 총선에서 자신이 여권의 ‘ 간판’이 돼야만 하는 처지이다. 이를 포기하면 ‘미래권력’ 꿈은 고사하고 마지노선으로 치부되는 ‘킹메이커(King Maker)’도 언감생심이다. 새누리당을 ‘김무성당’으로 해 총선을 이끌지 못하고 청와대에 끌려가는 ‘관리형 대표’에 머물 경우 그의 정치적 생명력은 도태된다.

반대로 박 대통령은 2016년 총선을 자신이 주도하고 관리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 조기 레임덕’이다. 수직적 작동기제가 강한 여권의 권력시스템을 감안할 때 차기 총선을 놓는다는 것은 ‘미래권력’ 쪽으로의 급격한 힘의 쏠림을 조장해 박 대통령은 2016년 이후 2년의 임기가 여당이 친 그물망 속에 갇히면서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이처럼 2016년 총선은 각자의 정치적 목표가 충돌하는 지점이 될 수밖에 없어 올 연말을 기점으로 한 차례의 대충돌은 언제든 예비된 것으로 간주돼 왔다. 이번 ‘개헌론’ 파동은 그 자체의 폭발성보다는 이러한 권력충돌의 기제가 작동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개헌론’은 터질 것이 터지게 하는 점화장치였다. 

2016년 총선이 양자간 충돌을 불가피하게 한 요인이다. 임기 4년차 총선의 특성 때문에 현재권력이나 미래권력 모두 절대 놓을 수 없는 선거이다. 대통령 집권 마지막 해의 총선은 현재권력의 힘이 떨어지고 미래권력으로 힘의 균형추가 이동하기 자연스런 흐름 때문에 어떤 과정을 거치든 권력의 승계는 자연스럽다.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2년 총선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틀어잡았고 이명박 정권 말기에 치른 2012년 총선을 박 대통령이 맡았다.

김영삼 정권 집권 4년차에 있었던 1996년 총선은 달랐다. 김 전 대통령은 ‘신한국당’이 이른바 ‘와이에스(YS)당’으로 자신의 통제 하에 뒀다. 차기 대선후보들을 9룡(龍)의 대열로 만들어 자신이 ‘낙점(落點)’코자 했다. 인내하며 ‘낙점’을 기다리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가 여권권력을 장악한 것은 1997년 벽두에 터진 김현철 비리와 외환위기로 김 전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나서야 가능했다.

 

김무성 차기총선 염두 두고 ‘개헌론’ 제기, 박대통령이 이를 ‘도발’로 간주

문제는 김무성 대표가 이회창 전 대표의 길을 밟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이 전 대표의 경우 1996년 총선 때 9룡 중 하나로 입문한 정치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김 대표는 다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낙점’ 가능성은 거의 제로(0)에 가깝기 때문에 2016 총선을 자신의 정치적 승부처로 삼아야만 한다.

그래서 김 대표는 7.14전대에서 ‘당청 수평관계’를 강조하며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당 대표에 취임한 후에는 박 대통령과 자신을 권력의 ‘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대표 취임 직후 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풍우동주(風雨同舟)’란 말을 꺼냈다. 김 대표로선 자신을 ‘인정’해달라는 취지였으나 청와대나 박 대통령 입장에선 ‘도발’로 간주될만한 비유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곧바로 봉합됐다. ‘세월호 정국’으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로선 당시 어찌할 겨를이 없는 형편이었다. 7.14전대에서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을 내세우고도 창피할 만큼의 큰 표차로 패했다. ‘민심’ 뿐 아니라 ‘당심’도 멀어져 가는 위기상황이었다.

청와대는 ‘세월호 정국’ 수습에 김무성 대표의 힘이 필요했고 김 대표 또한 진영 대립으로 치닫는 ‘세월호 정국’으로 박 대통령과 대립을 선택할 수 없었다. 이 경우 그는 여권진영으로부터의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또 김 대표로선 너무 빨리 현재권력과 각을 세우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위태위태한 일시적 ‘동반자 관계’는 여야가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에 합의하고 국회가 정상화되면서 곧바로 균열을 드러냈다. 여(與)든 야(野)든 2016년 총선 공천을 둘러싼 ‘당내 정치’, ‘진영 내부 정치’ 단계로 접어드는 국면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다.

김 대표는 보수혁신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친박계를 배제하고 새누리당 조직강화특위를 자신이 주도하는 모양새로 갔다. 차기 총선을 자신의 ‘ 이름’으로 치르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에 가까웠다. 보수혁신위 구성은 2012년 박근혜 비대위 체제의 ‘쇄신’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의 뜻이 담긴 것이고 조직강화특위는 친박계에 대한 인적청산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친박계가 반발할 수밖에 없다. 홍문종 전 사무총장이 조직강화특위 구성과 관련해 “(김무성 대표가) 인위적으로 현 당협위원장 체제를 개편한다든지, 위원장을 끌어내린다든지 교체하면 상당히 큰 저항이 있을 것”이라며 본격 ‘전투모드’ 돌입을 알린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2016년 총선을 직접 관리하려는 청와대와 사전에 교감해 나온 김 대표에 대한 경고로 봐도 무방한 발언이다.

김 대표의 ‘개헌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던진 것이다.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과 동행해 중국을 방문한 시점에서 나왔다. ‘개헌론’ 자체보다는 나름 청와대의 ‘당내 정치’ 개입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포석의 성격이 더 강했다. 다음 날 신속하게 박 대통령에게 ‘ 사과’해 확전을 피하려는 모습도 역력했다. 김 대표의 ‘개헌론’은 개헌논의 그 자체보다는 청와대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던 만큼 ‘치고 빠지기’의 수순으로 보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기화로 김 대표를 확실하게 ‘단속’하거나 ‘내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 대표의 발언이 있은 지 5일이 지난 시점에 이를 두고 ‘의도된 발언’으로 규정하며 정치쟁점으로 만든 것은 청와대였다.

오히려 뒤늦은 “김 대표의 개헌발언을 실수로 보지 않는다”는 청와대의 입장은 ‘당내 정치’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2016년 총선을 ‘김무성’이란 간판으로 치를 수 없다는 의미를 담아 차기를 두고 김 대표와 경쟁하는 주자들과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에 가깝다.

청와대의 정치적 의도는 김 대표를 중심으로 당내 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차하면 당 대표 권력까지 흔들겠다는 뜻까지 내포하고 있다. 친박계인 서청원 최고위원 등 몇 명의 지도부가 사퇴하면 김무성 체제는 곧바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통합민주당의 이해찬 대표체제를 무너뜨리는데 당시 김한길 최고위원 등 비노 지도부가 최고위원직 사퇴가 결정타였던 것이 반면교사이다. 김태호 최고위원이 10월23일 느닷없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것은 어떤 의미에선 향후 새누리당 세력 다툼에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개헌 성사 가능성 낮아, ‘개헌논란’은 청와대의 당 개입 ‘빌미’ 돼

결국 국정감사 기간 중 정가를 강타한 ‘개헌논의’ 논란은 여권내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간의 충돌이란 본질을 드러내는 격발정치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실제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개헌’의 성사 가능성은 낮은 것이 현실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 다수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개헌안 마련 자체도 쉽지 않다. 한국 헌정사 9번의 개헌을 보면 국민을 강제동원하는 절대 독재자 존재, 국민의 강력한 저항 이 둘 중 하나에 기반해야 개헌이 가능하다.

‘87 체제’ 출범으로 절대 권력자의 존재는 사실상 사라졌고 지금 국민 대다수도 ‘개헌’을 절박한 시대적 과제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권에서의 ‘개헌논의’는 분위기 환기 이상이 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길리서치가 10월17-18일에 조사한 개헌관련 여론조사 지표를 보면 ‘개헌논의’에 대한 찬성이 과반으로 높지만 실제 개헌방향에 대해선 60% 이상의 국민이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선호하는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에 대한 선호도는 20%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개헌에 대한 국민적 합의기반이 취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헌논의’ 찬성이 비교적 높게 나온 것도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 인사와 통치스타일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측면이 담겨 있어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결국 이번 ‘개헌논란’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미래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김 대표가 현재권력인 박 대통령에게 던진 정치적인 견제구로 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견제구’를 ‘견제구’로 수용하지 않고 ‘의도된 도발’로 규정해 확전에 돌입했다. 이를 청와대가 ‘당내 정치’에 개입하는 빌미로 잡은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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