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정보마당 Current Issue

Current Issue

게시글 검색
[정치] '원내대표' 내려놓는 박영선, '고난의 147일'
hollyhock 조회수:746
2014-10-02 11:27:21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2일 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5월8일 '당당한 야당'을 전면에 내걸고 선출된 지 147일만이다.

박 의원은 이날 오전 사퇴의 변에서 "작은 매듭이라도 짓고 떠나는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간신히 매듭지은 세월호특별법 여야 3차 협상안마저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지못해 원내대표직은 '상처뿐인 영광'이 됐다.

돌이켜보면, 그를 원내대표 자리에 올려놨던 '야당성'과 '무 계파'는 세월호정국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대여 강경노선을 주장한 당내 초·재선 의원들과,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한 신주류의 지지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모두 허물어졌다.

우선 야당성. 박 의원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두 번의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이 당내 반발로 무산되면서부터다.

그는 8월7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세월호특별법 합의를 이뤘지만 유가족 반대에 부딪혔다. 19일 2차 합의안을 발표했지만 또다시 유가족과 당내 반발로 무산되면서 힘이 급격히 빠졌다. 그를 지지했던 당내 초·재선 의원들은 의원총회에서 박 의원이 대여 투쟁력을 보이지 못하고, 서둘러 합의를 이뤘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더 근본적으로 박 의원은 무계파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이슈를 등에 업고도' 6·4지방선거와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졌다. 당이 공천파동에 휩싸이면서 박 의원을 지지했던 김한길 안철수 당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박 의원은 원내에 이어 비상대책위원회까지 총괄하는 자충수를 뒀다.

9월 초 박 의원이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는 시도는 친노 강경파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영입 과정에서 문재인 의원이 깊숙히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교수 영입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문 의원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박영선 체제는 사실상 무너졌다.

탈당까지 고민, 나흘간의 칩거 끝에 국회로 돌아온 박 의원은 "지금부터는 저에게 주어진 책임감만을 짊어지고 가겠다"며 세월호특별법 합의 이후 물러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후 3차협상에선 전면에 나서지 못했고, 무엇하나 뚜렷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극도로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박 의원이 무 계파인데다, 당내 친분관계도 두텁지 않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박영선 왕따설'이 돌기도 했다. 그가 세월호특별법 2차 협상에 앞서 공개적으로 당의 중진의원, 원내부대표단, 3선의원, 상임위 간사단 릴레이회동을 벌인 것을 두고선 "당내 친분이 없어 그런 방식을 택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초·재선 시절 당의 결정마다 어깃장을 놓더니, 본인이 그대로 되받는 것"이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왔다.

박 의원은 이날 사퇴 변에서 "책임이란 단어에 묶여 소신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걸어온 힘든 시간이었다"며 "제가 폭풍의 언덕에서 힘들어 할 때 격려해주신 동료의원들, 힘내라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경남 창녕 출신으로 3선인 그는 MBC 기자를 거쳐 2004년 제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했다. 18대·19대 총선 때 서울 구로을에서 당선됐다. 당 대변인, 정책위의장, 최고위원 등을 거쳤고,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첫 여성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역임했다.

 

 

[ 원내대표직 사퇴서 전문]

원내대표직 그 짐을 내려놓으려합니다.

책임이란 단어에 묶여 소신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걸어온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세월호 비극의 한 복판인 지난 5월 8일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순간부터 예감했던 일일지도 모릅니다.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유가족분들께는 매우 미흡하지만 작은 매듭이라도 짓고 떠나는 것입니다.

어제 안산에서 만나 뵌 유가족분들로부터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들었던 끝까지 함께해달라는 호소가 가슴 속 깊이 남아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위원회는 가능한 빨리 출범해야합니다. 빠르게 사라져가는 증거들을 멈춰 세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증거들을 현명하게 붙잡아야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법’을 만들기 위해 벌인 협상을 일단락하며 그간 드리고 싶었던 수많은 얘기들의 아주 작은 조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세월호 특별법만은 정직하게 협상하고 반드시 결실을 맺어야한다고 믿었습니다.

낯선 정치에 뛰어든 뒤 지난 10년의 경험에서 저는 소리는 요란했지만 정작 목표는 이뤄지지 않는 많은 경우를 보았습니다.

2004년 국가 보안법 협상이 그랬고 과반 의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17대 국회의 검경 수사권 조정 협상이 그랬습니다. 지난해 국정원 개혁법 역시 우리가 개혁특위위원장까지 맡았지만 결국 법 한 줄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만은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되는 일을 되는 것처럼 포장해 시간을 지체시키는 것은 진실의 증거들이 사라지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냥 바라보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진상 규명이 가능한 법을 가능한 빨리 제정해야한다는 일념으로 끌고 온 협상 과정에서 제가 받은 비난들 중 상당 부분에 대해 드릴 말씀도 많지만 그저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합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협상이라는 씨름을 벌인 시간이었습니다.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한 지금 우리당이 겪고 있는 고통은 치유되기 힘들다는 것을 어렵사리 말씀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법’ 이름만 법일 뿐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보내는 가슴 아픈 편지 같은...이런 법을 만드는 일은 이제 더는 없어야겠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폭풍의 언덕에서 힘들어 할 때 격려해주신 많은 동료의원님들 힘내라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top